WBC 11년 … 만만한 팀이 없다
'도대체, 이들은 누구란 말인가?(Who are these guys, anyway?)'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라운드(8강전)에서 한국은 미국을 7-3으로 꺾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스), 데릭 지터, 로저 클레멘스(이상 은퇴) 등 메이저리그 수퍼스타가 즐비한 미국을 상대로 한국은 경기를 지배했다. 대이변에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놀랐다. 당시 박찬호, 서재응(이상 은퇴), 김병현(전 KIA) 등 메이저리거가 있다고는 해도 한국 야구대표팀은 분명히 메이저리그보다 한두 단계 아래인 마이너리그 더블A 내지 트리플A 수준이었다. 그로부터 12년, 제4회 WBC 개막전에서도 이변이 일어났다. 16개 참가국 중 세계 41위로 최하위 랭커인 이스라엘이 6일 한국(3위)을 2-1로 물리쳤다. 뉴욕타임스는 '기적 중의 기적(miracle of miracles)이 일어났다. 다윗(이스라엘)이 골리앗(한국)을 이겼다'고 표현했다. 한국은 7일 9위 네덜란드전에서도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0-5로 완패했다. 김인식(70) 한국 감독은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WBC 본선 진출팀 전력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만만히 볼 팀이 없다"고 했다. 강팀과 약팀의 격차가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의미였다. 프로야구 리그가 활성화 된 국가는 한국·미국·일본·대만 정도다. 2006년 WBC를 창설한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선수노조는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과 같은 국가대항전이 야구의 저변을 확대하고, 국가간 전력차를 줄일 것으로 기대했다. 그들의 기대대로 3번의 대회를 통해 세계 야구는 상향평준화 됐다. 한국은 2006년 WBC 4강, 2009년 WBC 준우승으로 놀라움을 전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선 9전 전승 금메달로 저력을 보여줬다. 한국은 야구 세계화의 롤모델이었다. 전력의 열세를 치밀한 전략과 투지로 극복했다. 이번 WBC에서 한국은 네덜란드와 A조 1위를 다툴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한국이 도전을 받는 입장이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선수 구성부터 차질을 빚었다. 미국에서 뛰는 선수가 8명이지만 이번 대회에 참가한 선수는 오승환(세인트루이스) 뿐이다. 반면 12년 전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세계를 향해 도전하는 팀들은 늘어났다. 네덜란드는 해외 영토인 퀴라소, 아루바 출신 젊은 메이저리거들을 중심으로 팀을 구성했다. 이미 2013년 WBC에서 4위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다. 이번에 세계 3위 한국을 또 다시 5-0으로 꺾은 네덜란드는 내친 김에 정상까지 노린다. 이스라엘의 등록된 야구선수가 800여명에 불과하다. 2007년 시작했던 프로야구 리그는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2013년 WBC에선 본선 진출에도 실패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메이저리그 정상급 선수들을 뽑진 못했지만 젊고 재능있는 선수들을 모아 안정된 전력을 보여줬다. 제리 와인스타인 이스라엘 감독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우리는 강하다"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 세계 최강으로 군림했던 쿠바는 정상권에서 멀어졌다. 미국은 지난 세 차례 WBC에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오히려 도미니카공화국, 푸에르토리코, 멕시코 등이 메이저리그 스타들을 앞세워 호시탐탐 정상을 노린다. 절대강자는 없고, 강자와 약자의 경계가 모호해진 세계야구 속에서 한국은 변화의 흐름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서서히 밀리고 있다. 김원 기자 [email protected]